May 2026 (#291)
April 2026 (#290)
March 2026 (#289)
Rights Begin Here
The city that remembers. Where resistance becomes story.
About Gwangju News
Gwangju News is the international magazine of Jeonnam-Gwangju Integrated Special City, published monthly since July 2001.
Now in its 25th year, the magazine covers the full spectrum of life in this remarkable region — arts and culture, science and technology, nature and daily life — alongside the deeper currents that have always defined Gwangju: democracy, human rights, peace, justice, and solidarity with the oppressed.
From memorial sites to music stages, from international cooperation to grassroots movements, each issue reflects a city that is at once creative, resilient, and globally connected.
Our Story
Gwangju News began in July 2001 as a modest 8-page black-and-white monthly, introducing Gwangju to English-speaking readers around the world. By 2003, growing readership brought color printing and expanded coverage. Over the years the magazine grew to 56, then 80 for the 200th issue back in 2018, then 74 pages this month — and has been published digitally on ISSUU since 2015, freely accessible to anyone, anywhere.
290 issues to date. One city. Every story.
Read the Latest Issue
Available free every month on ISSUU.
ISSN 2093-5315 · Founded by Gwangju International Center (July 2001) · Now co-produced by Asian Legal Resource Center Korea ( since December 2025)
인권은 이 곳에서 시작된다
기억의 도시, 저항이 이야기가 되는 이름 - 광주
월간 광주뉴스는?
전남-광주의 영문 국제 매거진으로, 창간 25주년을 맞이하는 광주뉴스는 이 특별한 지역의 삶을 다양하게 담아낸다. 예술과 문화, 과학과 기술, 자연과 일상, 그리고 언제나 광주를 정의해 온 가치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정의, 그리고 억압받는 이들과의 연대.
추모의 공간에서 공연 무대까지, 국제협력에서 시민운동까지, 매달 창의적이고 강인한 국제도시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월간 광주뉴스의 역사
광주뉴스는 2001년 7월 영어권 독자들에게 광주를 소개하는 8페이지 흑백 월간지로 시작했다. 2003년 독자층이 늘어나면서 컬러 인쇄로 전환하고 내용도 다양해 졌다. 이후 56쪽, 80쪽, 74쪽으로 성장했고, 약 10년 전부터 디지털로 발행되어 전 세계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다.
290호. 하나의 도시. 전남-광주의 모든 이야기
최신호 읽기
매월 ISSUU에서 무료 제공
ISSN 2093-5315 · 광주국제교류센터 창간 (2001.7) · 현재 아시아법률자원센터 코리아 공동 발행 중 (2025.12~)
🌺 Remember Jeju 4.3
An island massacred. A nation silenced.
A wound still open.
제주 4·3,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 조셉 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WHAT 소장)
필자의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가족을 부양하다 해방 후 제주로 돌아오려 했으나, 고향에서 "지금 오면 죽는다"는 급보를 받았다. 4·3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그는 끝내 제주로 돌아오지 못했고, 100세가 넘어 세상을 떠난 뒤에야 흰 재가 되어 고향 땅을 밟았다.
역사적 배경
해방 이후 제주는 극심한 혼란 속에 있었다. 미군정은 제주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실업과 물자 부족, 콜레라 창궐이 섬을 덮쳤다. 정치적으로는 친일 잔재 청산을 원하는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과, 반공을 앞세운 우익 세력 및 미군정이 충돌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3·1절 발포 사건 — 4·3의 도화선
1947년 3월 1일, 관덕정 광장에서 열린 시위 도중 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분노한 군중에게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발포한 경찰은 제주 출신이 아닌 육지에서 파견된 응원 경찰이었다. 이 사건은 미군정과 우익 세력에 대한 민심 이반을 심화시켰고, 1948년 4월 3일 한라산 봉화를 신호로 4·3이 본격화되었다.
학살
미군정과 우익 세력은 서북청년단 등 극우 단체를 제주에 파견해 무자비한 토벌 작전을 벌였다. "보이는 즉시 사살 또는 체포"가 공식 명령이었다. 정부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자는 14,442명이며, 추산치는 3만~8만 명에 이른다. 당시 제주 인구 28만 명 중 10명 중 2~4명이 희생된 셈이다. 희생자 대부분은 이념과 무관한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무명천 할머니
1949년 1월 12일, 진압군에게 총을 맞아 아래턱을 잃은 한 여성은 평생 하얀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살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무명천 할머니"라 불렀다. 본명은 진아영(1914~2004).
정방폭포
오늘날 제주 남쪽 해안의 유명 관광지인 정방폭포는, 4·3 당시 처형된 이들의 시신이 바다로 던져진 곳이다.
화해와 진실을 향해
2005년, 4·3 발생 57년 만에 한국 정부는 국가 폭력을 공식 사과하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4·3은 여전히 좌우 이념 논쟁에 갇혀 있고, 희생자 묘비에는 아직도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다. 필자는 말한다 — 진정한 화해는 역사적 진실의 완전한 규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이 글은 신강협 소장의 영문 기고문 "The April 3 Jeju Tragedy: Stories of Those Who Could Not Return" (Gwangju News, April 2026)을 ALRC Korea가 한국어로 요약·정리한 것입니다.